리서처이자 안무가인 서영란은 각각 일본과 스리랑카의 퍼포먼스 작가인 나츠코 테츠카, 베누리 페레라와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며 전통의 관념과 서구식 근대화에 관한 사유의 궤적을 공유한다.

A researcher and choreographer Yeong-Ran Suh will introduce her collaborative work Floating Bottle Project that she has been co-developing with two other performance artists Natsuko Tezuka from Japan and Venuri Perera from Srilanka. Throughout the process, they probe into, by sharing a long thread of thoughts, the notion of tradition and western modernism. (updated on 1st Feb. 2020)


     Unpacking the letters: Floating Bottle Projects (2016~), 2019    
     편지 다시보기: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 (2016~), 2019   
     Yeong-Ran Suh 서영란    


Natsuko Tezuka, Venuri Perera and Yeong-Ran Suh, Experiment (2018) Kyoto Experiment © the artists

    (EN(Excerpt)/KR)    



Natsuko sent her long-standing question through the Archive Box to artists in Asia who have gone through social changes that are similar to what she had experienced. The question concerned the concept of ‘tradition’, a topic of the project’s three people’s shared interest, and social changes that took place throughout the 20th century which have shaped the current feature of tradition. The sender hoped that her letter in a bottle would reach someone across the ocean, and the receiver empathised with agonies written in the letter and sought answers for the question – the process of which constituted a score.
The three’s conversation provided a space for discussions of the common structure of thoughts, which solely concerns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to be expanded to that considers modernisation process and Western influence in Japan, Korea, Sri Lanka, and other Asian countries. It also offered a comparative viewpoint among nations and/or races that had experienced colonial occupations. Our practices, which depart from our common interest in the notion of tradition, comment on the invented tradition formed under the inflow of Western modernity. Furthermore, we address issues of identity of the citizen that modernised nations brought into existence. Is it possible to conceptually define the act of marking boundaries that modernisation process brought about? Otherwise, would it be more logical to perceive those concepts through her body, just as Natsuko does in her own practices?



전통을 보는 스코어

나츠코 테즈카, 베누리 페레라, 그리고 나 (서영란)은 종교 신앙을 아우르는 의식ritual과 민속/전통 춤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만난 계기는 단순명확한데, 과정은 우연과 인연이 뒤섞여있다. 2013년 페스티벌 봄에서 공연한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를 본 비평가 다이스케 무토가 나츠코 테즈카를 소개해주었다. 영상으로 본 그녀는 소마틱한 신체와 연결된 심리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처럼 보였다. 2014년에 같은 작업으로 페스티벌 도쿄에 공연을 갔을 때, 그녀가 내 공연을 보러왔다. 그 다음해부터 나츠코는 (그녀가 예술가, 학자, 비평가들가 함께 자생적/자유기부로 여는) 노라 페스티벌에 나를 초대했다. 2015년과 2016년 두 해 동안, 노라 페스티벌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고, 각자의 작업을 발표했고, 주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민속의식을 보러 다녔다. 예를 들어 오이타의 한 절에서 열리는 불교와 신토가 섞인 의식이나, 교토 외곽의 한 시골 어르신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작은 북춤. 나츠코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 안에서의 민속의식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전통의식, 한국의 탈춤과 굿 등을 리서치해오고 있었다. 내 스스로도 서울 안의 마을굿들, 황해도, 남해안, 부산, 제주도의 큰 굿들을 보고, 작업에 부분적으로 담고 있었고, 나츠코씨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흥미로워했다.

2015년 광주아시아문화전당의 레지던시에 온 베누리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녀는 스리랑카에서 민속 의식들을 조사해왔고, 그 해에는 한국에서 전통의식과 춤을 보고 배우던 중이었다. 그녀는 리서치 결과물을 광주 레지던시 중 보여줬는데, 그 작업은 싱가폴 아트 페스티벌(2015년 8월)과 사이손 재단의 아카이브 박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츠코씨의 아카이브 박스(여러 쪽지와 편지가 담긴)를 받은 베누리가 그녀의 쪽지들, 일종의 스코어에 반응하여 만든 작업 <Passport Blessing Ceremony>였다.

나츠코는 아카이브 박스를 통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회적 변화를 겪은 아시아 지역의 아티스트에게 그녀의 오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세 명이 공동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에 대한 관심과 그 ‘전통’을 바라보다 보면 저절로 드는 20세기 동안 사회가 변화되어 온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발신자는 유리병에 넣은 편지가 바다 너머의 누구가에게 닿기를 바랐고, 수신자는 유리병 속 편지의 고민을 공감하고 그 질문을 따르는 과정이, 즉 스코어였다.



나츠코의 편지 A letter from Natsuko (필자에 의해 요약됨 summarized)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서기 1970년에 지금 「일본」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난 여자입니다. 제가 살아 왔던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학교 교육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해져 오는 정보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나름대로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 왔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는 , , 생활, 애니메이션, 연예인, 학교 생활, 그런 것들에 둘러 싸여 특별한 의심도 가지지 않고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런표면적인 문제가 없음 대한 막연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의구심을 공유 있는 상대는 성인이 때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기 2011 3 11 , 일본 동북 지방에서 지진 원전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일본사람들이 느끼던표면적인 평화 뒷면에는, 실제로 어떤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낙관적으로 생각할 없는 심각한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경제 위기와 에너지 문제, 그리고 원전 문제와 전쟁의 가능성 비관적인 전개를 가질 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세대, 문화, 자라 방식, 가치관 등을 나는 상상 없지만, 속에 담긴 편지처럼 글을 가능한 멀리 던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글에 소통한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멀리 던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아주 작은 몸짓일 있지만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있기를 기원하며~

  • 서양이외의 국가에서 서구화와 서구 근대화가 일어난 시기에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영향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권에 한때 가치관의 변동이 있었다고 느끼고 있는 아티스트로, 다음의 지시에 부응하여 공연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권에서 위에 있는 가치관의 변동이 일어난 시대 이전의 요소를 희미하게라도 남아있는 문화적 행위 (축제나 전통문화, 의식등) 이상, 실제로 참여해주십시오.

  • 행위 (축제나 전통문화, 의식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면에 쉽게 없는 과정이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 보세요. 예를 들어 오랜 시간 그것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 왔는지? 도중에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 어떤 이유에서 변화해 왔는지.

  •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당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끈질기게 자신에게 물어 주세요. 어쩌면 막연한 위화감, 불편함, 흥분, 끌리는 감각같은 것이 터져서 "뭐지?" 혹은 "어떻게 거야?" 그러한 감각을 느끼는 자신을 관찰해주십시오

서기 2014 12 8 일테즈카 나츠코


세 사람의 뒤섞인 인연은 나츠코씨의 제안으로 묶여졌다. 2016년 6월에 스리랑카에서 함께 만나, 그곳의 민속 의식, 탈 연극, 민속춤 등을 찾아보았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스리랑카 식민통치 시기에 채집되거나 제한된 전통춤과 의식, 무대공연화되면서 변화된 지점들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식민지 시대 이후, 탈 식민 지역/국가에서는, 과거에 대한 거센반응-밀어내면서 동시에 답습하는-과 이념적 상속ideological inheritance이 있었다. 식민 파워가 가지고 있던 ‘특정 인종/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이나 ‘정치적 표현 colonial idiom’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국가주의를 따라 한국민족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민족주의가 부상했었던 것처럼,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를 명목으로한 싱갈리 불교 국가주의Sinhalese Buddhist nationalism가 탄생했다. 스리랑카의 불교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수세기동안 공존했던 무슬림들을 향한 민족들 간의 긴장을 체감하였다. 2017년에 나츠코의 아카이브 박스는 베누리를 거쳐, 나에게 왔다. 베누리는 아카이브 박스와 함께 스리랑카의 정치적 사회적변화에 영향을 받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보냈다.



베누리의 편지 A letter from Venuri (필자에 의해 요약됨 summarized)

I was born almost as the same time as the ethnic conflict in the North East of Sri Lanka began…and there was also a young communist uprising and many youth killed…In 2004, we were affected by the Asia Tsunami, where 40 000 people died in a span of 10 minutes. Here, the all communities were affected and the emergency situation shifted to disaster management... In 2009 the conflict came to an end, and the regime… started moving towards a dictatorship. Human rights violations continued and the grievances of the civilians not addressed.

But at the time of receiving Natsuko’s letter, the people had come out and voted for a regime change, and suddenly we had a new government and there was a sense of hope. It became possible to speak out without fear of your life and family.

Before receiving the letter, I had started researching traditional healing ritual’s which used to be done as a means of curing mental illness. This was as a means to respond to the post war Sinhalese Buddhist nationalism which was reminiscent of post colonial post independence time rising in the country. This Sinhalese nationalism was the root cause for the conflict in the first place. I was grateful to have received Natsuko’s text as it was possible for me to look at something I had already started looking at and was interested in, in a very different perspective.

내가 아카이브 박스와 베누리의 편지를 받은 것은, 한국의 촛불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이 바뀐 뒤였다. 커다란 사회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태극기와 함께 드러난 한국의 극우, 오래 충돌해왔던 이념들의 역사적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광장에 등장하는 성조기, 태극기, 이슬라엘의 국기와 그것을 들게하는 이념/신념/믿음들을 생각하며 ‘앙케이트’를 작업했다. 그해 여름, 요코하마에서 나츠코의 작업, 베누리의 ‘패스포트 세레모니’, 그리고 나의 ‘앙케이트’를 같이 발표하며,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당시의 작업들은 ‘전통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서구식 근대화/현대화로 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 뿐만 아니라, ‘근대화/현대화를 겪고 탄생한 국가가 만들어낸, 어느 시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베누리의 작업은, 특정 여권으로 인해 (식민지 시대의 인종과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탈식민시대에 연장된 듯한) 특정 국가의 개인에게 지워진 국제적 차별을 드러냈다. 내 작업의 경우, 서구식 근대화/현대화 이후 온 세계에 심어진 ‘국가와 시민’개념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각 국가가 시민인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들, 태어남과 동시에 법을 통해서 국가와 개인이 맺게 되는 계약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 사람이 ‘서구식 근대화/현대화가 전통에 가져온 변화’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만들어진 사회적 틀을 관찰하는 작업을 했던 것은, 당시 (그리고 지금도) 세 사람의 처지가  ‘각 국가가 겪은 식민화, 근대화/현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일뿐 아니라 타국에 이주한 적이 있거나 이주하여, 그 곳의 중심에 부딪히는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자국과 타국 각각이 만드는 개인의 정체성과 그에게 부여하는 책임, 더해서는, 자국과 타국의 서열 혹은 국가들 사이의 서열과 그로 인한 차별을 보았던 것 같다.   



작업 과정

우리는 주로 페이스북 메신저, 스카이프, (가끔)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작업에 대해 논의했다. 2017년 후쿠하마에서 발표했던 서로의 작업을 보며,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를 식민시대부터 시작된 서구식 근/현대화로 정리했다. 키워드조차 너무 방대했기때문에, 일단 구글 독스에서 타임프레임을 만들어 공유했다. 식민시대에서 각 3나라의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기까지, 세계사 안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각 3 국가 안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 및 조약 등을 요약하여 공유하였다. 그리고 각자가 관련된 질문이 떠오르면, 바로 메시지로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했다. 물론 베를린/후쿠오카를 오가는 나츠코, 코페하겐/진주를 오가는 나, 콜롬보/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업하는 베누리가 서로의 시차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심정적 느긋함과 시간적 느슨함을 요구했다. 작업을 위한 대화가 필요할 때, 바로 답이 올수도, 일주일 후에 혹은 한달 후에 올수도 있었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계획서가 곧 마감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바로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거나 질문에 답할 수 있었지만, 다른 작업을 동시에 진행 중인 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차이들이 개인의 성격차이, 작업하는 방식의 차이, 민족성의 차이이기 보다는, 그 마저도 근대화/현대화 이후, 효율성과 경제성의 관념이 만든 시간성을 각 출신 사회가 개인을 훈련해 온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개인적인 사정 (출산과 육아)으로 인해 2018년 후쿠오카 리서치와 말레이시아와 교토에서의 발표는 물리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동료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츠코와 베누리를 그것을 유연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2018년 여름, 그들이 후쿠오카에서 작업을 진행할 때, 매일 무엇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지 메세지를 받았고, 나는 그에 답하는 정도로 작업을 유지했다.



2018년 7월 메신저 대화 (필자에 의해 요약됨 summarized)

Venuri: today we discuss about; What is the hierarchy? What is common law? What is primitive or savage? What is civilization? What is violence? What is a nation-state?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spontaneous and directional? What is pre-modern? What is an individual? What is a community? What is a contract? What is capitalism? What is trade? What is magic? What are the difference and common things in contract and magic?
Yeong Ran: In which sense, do you use the word, ‘contract’? The contract between God and human? King and Servant? Nation and citizen?
Venuri Perera: Also, marriage. Natsuko was talking about a signed contract, and if there were contracts before western modernization.
In your last performance in Yokohama, also contract was prominent. Also, I signed after my questions in the ‘Blessing Passport Ceremony’.
Natsuko: During the western modernization, various Asian countries had multiple contracts by colonials. What kinds of contracts were there? When Japan colonized Korea, there were also several contracts. Please check your country’s contract and make a shift of it as a personal contract.

2017년 요코하마에서 발표했던 세 작품은, 우연히도 모두 다른 종류의 ‘계약’을 다루고 있었다. 메신저 대화 중, 세 사람이 떠올렸던 각기 다른 종류의 ‘계약’이, 식민지 시대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조약’으로 집중되었다. 나츠코의 제안에 따라, 일본이 서방국가와 맺었던 조약, 한국이 일본과 맺었던 계약, 스리랑카가 영국과 맺었던 조약의 문서내용을, 개인과 개인이 맺는 계약 (예를 들어 갑과 을)으로 변형시켰고, 다른 점을 비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는 (당시에 석사논문에서 영국 식민 정책이 말레이 이슬람과 관습법에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 조약이 스리랑카와 말레이시아에 어떻게 다른지, 또 일본과 한국의 조약과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공교육 역사시간에는 주로 일본과의 차별 조약을 배웠다. 일본이 서방과 미리 맺은 차별조약들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는 나츠코의 말을 들었을때, ‘일본의 한국 식민 통치는 어떠했고 국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냐’였던 옛 관점에서, ‘일본은 왜 그런 식민통치를 하게 되었나, 왜 서양을 따라갔어야 했나’라는 나츠코의 생각을 공유/확장하게 되었다. 일본 vs. 한국의 구도에서 서양식 근대화/현대화 vs. 일본, 한국, 스리랑카 외 여타 아시아 지역을 같이 고민할 지대가 마련되었다.

그동안 식민지 역사에 대해 대중의 관심과 의식은 높은 반면, 식민통치를 경험한 지역/민족 사이에서 비교적 관점을 갖은 기회는 드물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심정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데, 어떤 서양인도 식민통치를 홀로코스트와 비교하진 않는다. 영국의 식민통치방식은 인도, 스리랑카 그리고 이스트 인디 각각이 다르며, 또 홀로코스트 혹은, 서구유럽의 아프리카 노예제와도  다르다. 이 다름은 당시 서구유럽이 세계를 주권국가, 중간의 주권국가, 주권이 없는 민족으로 분리시켜 접근했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더 자세한 비교 연구는 없었(고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식민통치를 당한 국가에서는 그 역사를 공부하지만, 정작 식민통치를 한 국가에서는 그 역사를 공교육에서 다루어야할 중요한 역사로 여기진 않는다. (이 부분은 유럽이 이민자들, 난민들, 소수 종교그룹들을 자국내 다문화가족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자국의 시민으로 통합하려할 때, 공허해지는 지점으로 느껴진다. ) 그렇기에 식민지배/통치/사업이란, 국가적 단위에서 해외로 가서 진행한 경제적 사업으로 간단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이런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이 식민시대 이후를 신 자본적 식민시대로 나아가게 한 것을 아닌지, 세 사람이 알고 있는 각각의 식민역사와 그 대화에서 일어난 작용들은, 여러 생각들을 지금까지도 부유하게 한다.

나츠코는 2017년 겨울, 코펜하겐에 나를 만나러 왔었다. 당시 그녀는 서구 근대화, 현대화 이전과 이후의 성격의 차이를 분명히 정의하고 싶어했다. 서구식 근대화/현대화의 ‘경계짓기Bordering’ 성격을 정의하기 위해 또 근대화/현대화 이전의 사회에서 ‘경계짓기’하는 성격을 구분하기란 어렵고, 구분할 수록 예외가 발견되었다. 개별적인 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서구 구조주의적인 철학자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했다. 근대화/현대화의 정의를 위해 우리가 서구 모더니티의 성격을 정의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이론들은 여성주의, 인종, 젠더 등의 인권을 논의하는데서 간략히 사용되는 수준이고, 아시아의 탈오리엔탈리즘 무브먼트는 아시아에 국한된 외침으로 느껴졌다. 유럽에서는 그 땅의 원주민들(예로 사미, 이누이트 등)들을 바라볼때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사용하고 있다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과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슬람 국가의 부상을 식민시대에 마련된 세계정치적 지형구도나 서구이념의 상속과 연결짓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츠코가 시도하려는 서구 근대화/현대화의 ‘경계짓기’를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은 가능할까? 나츠코가 원래 자기 작업을 하는 방식처럼, 몸으로 지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논리적일까? 우리의 서구식 근대화/현대화의 특성에 대한 개념적 정의 시도는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부족한, 시대적으로는 이미 늦은, 하지만 각 개인의 경험들로 결결이 지각되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실험 Experiment

2018년 여름, 나츠코와 베누리는 후쿠오카에서 ‘실험’을 만들었다. 그들은 2017년 후쿠오카에서 내가 발표한 ‘앙케이트’의 작업 형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은 즉 나츠코와 베누리의 작업이 퍼포머/작업자가 국내/국제적인 시스템 안에서 지각하는 차별을, 관객 스스로가 직접적인 참여자로서 지각하도록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 실험의 큰 틀은, 타임프레임이 보여준 서구 열강의 불평등 계약과 식민 통치 방식의 주요 법칙 (이후 후기식민주의 이후에는 지역의 정치 권력자에게 되물림되어온 법칙)을 들여온 것 같았다. 서구 근/현대화의 특성을 언어로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실패했지만, 그 특성에서 연유한 ‘법칙’들로 만들어진 게임이, 서구 근/현대화의 특성을 신체적으로 사유하게 할까?

나츠코와 베누리는 이 실험을 말레이시아의 페스티벌과 교토 익스페리먼트에서 참여자/관객들과 실행했고, 다양한 참여자/관객의 태도와 반응을 경험했다. 이후 우리는 이 실험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지, 한국과 스리랑카에서도 진행 할 필요가 있는지, 특히 한국에서 한다면, 한국과 일본과의 예민한 관계를 어떻게 고려해야하는지, 이 실험이 심리학자들의 실험과는 어떻게 다른 건지, 이 실험이 담고있는 서구 근/현대화에서 연유한 틀이 서구 철학자들이 정의한 서구 모더니티의 특성과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질문하고 논의했다. 2019년 스리랑카에서의 갑작스런 테러로 스리랑카에서의 실험과 베누리의 참여는 취소되었고, 한국에서 나와 나츠코만이 만났다.  

나츠코는 교토에서 진행됐던 게임의 피드백을 들려주었다.

“It was hard for me to see that the audience was feeling the pressure. However, there was something only visible after those long hours. That is, when Japanese people stand on a line that has been drawn, their relations with people on the side cut out completely. It was difficult to find something happening between the people, to find out another possibility and to come up with other actions…

To observe their unconscious status in Japanese society, I feel that it takes more time to evaluate the experiment…

People make an effort to go ahead in line with the line to compete. It is similar to taking an exam or entering a company. At that time, it is difficult for people to interact with other people and create alternative situations such as "I wonder what is wrong with this?" can we have another possibility?"

나츠코는 그 실험을 자신도 함께 참여하는 동안 일본인들의 어떤 의식적인 태도의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우리는 이 실험이 지닌 한계들을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다른 지역에서 하고 다른 반응을 얻은 것을 참여한 모두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실험이 공연이 아니기에 ‘참여자의 신체적 활동’을 요구하는 게임형식의 쇼케이스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실험 + 워크샵 +참여자와의 대화를 모두 포함한, 실험과정 속에 있는 작업으로 인식하고 소개하였다. 약 십여년간 나츠코는 자신의 몸 속을 마치 해부학과 같이 의식적으로 깊이 관찰하였을때 나타나는 몸의 반응과 움직임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녀의 작업 메소드는, 이 실험 안에서, 참여자가 자신의 상태, 감정, 뿐만 아니라 참여하고 있는 ‘실험’자체를 관찰하면서, 그 경험을 각자의 생활과 속한 사회의 풍경과 겹쳐보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실험의 틀 자체에 대한 모호함은 여러모로 지적되었으나, 참여자와의 피드백을 통해 신체로 감각되거나 사유되는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 참여자의 경험과 피드백이 실험의 한 부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실험은 누구나 사용하고 접근가능한 열린 리소스가 되었다. 우리는 이 실험에 참여한 어느 누군가가 또다른 지역에 가서 진행해주길 바라고 있다. 마치 이 프로젝트 이름의 은유처럼, 나츠코의 쪽지를 바다 건너 누군가가 다시 이어받기를.



가지 질문과 답변

워크샵 피드백 과정 중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 ‘실험’이 서구식 근대화에서 도출한 집단을 운용하는 장치들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지닌 집단을 운용하는 서열과 경쟁 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그에 속한 사람들을 유지하고 다스리는 계층화, 경쟁시키는 방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식민주의 시대부터 전세계로 이식된 서구식 현대화는 거대해진 집단의 규모와 집단을 식민화하는 속도, 자본의 규모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규모, 속도를 효율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그 이전의 사회와는 다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름이 이 실험의 장치들과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는데 이 실험이 그 장치들을 얼마나 잘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잘 담고 있다기보다는 이 실험이 참여자들로 하여금 그 장치들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지를 고민한다.

또 흥미로운 질문은, 이미 그러한 서구식 근/현대화의 사회적 틀을 벗어나서 포스트 모던적 커뮤니티를 이루고 사는 공동체들이 있고, 그런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데, 이 “실험”에서 제시하는 서구식 근대화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사실 여기에서 또 다른 역사의 모순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전 세계의 쟁점인 인권의 개선, 여기서 인권이란 일반적으로 서구 모더니티의 민주주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것들은 식민지 시대에 각 식민지에 소개되었고, 어느 수준에까지 식민 행정가들에 의해 식민지 사회에 도입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그 개념이 얼마만큼 식민제국의 메트로폴과의 평등하게 식민지에서도 사용되었는지, 또한 식민지의 로컬 엘리트들은 정치적 힘을 수여받은 이후 그 개념을 얼마나 평등하게 사용하였는지 의문이다. 식민시대와 근대화 이후, 세계 각 지역들이 마주한 문제/과제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개념을 그 지역사회의 특수한 성격과 어떻게 맞물려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었나 한다. 한편 서구식 현대화를 급격하게 경험했던 제 3-4세계가 이런 과도기를 겪고 있을때, 서구 유럽의 중심은 위의 인권 개념을 더 진보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그 결과 현재는 오히려 서구 유럽이  서구식 근/현대화의 개념들을 허물며, 가끔은 전통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성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양한 젠더성은 오히려 서구식 근대화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 가능했다는 자료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츠코씨는 작년에 독일 베를린으로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에도 시기에 일본을 방문한 서구인들로 인해, 일본은 남녀를 구분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근대 이전의 조선을 찍은 사진에서 여성이 가슴을 노출하여 아이를 수유하는 것이 평이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공공장소에서 수유를 하는 것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불편한 것이 되었다. 반대로 서구사회에서는 국회에서 수유를 하며 발언하는 여성 정치인의 모습이 진보한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SNS에서 공유된다. 이러한 포스트 모던적인 현상들, 서구화 이전의 사고방식을 불러일으키는 모습들은, 서구식 현대화의 특성과 영향을 알고난 후에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른 사대주의 혹은 식민주의적 사고로 그것이 오직 ‘우월한 서구사회의 진보적인 모습’라고 착각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실뜨기

한국에서 ‘실험’이 끝나고, 나츠코는 혼자 일본에 가서 ‘실험의 재평가’를 진행한다고 했다. 작년 교토에서 ‘실험’에 참가한 분 중 매우 불쾌한 경험을 했던 분들을 모아서, ‘실험’을 다시 해보고 피드백하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실험을 끝내고 난 후 그녀는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녀의 ‘drawing the line’이란 표현을 ‘경계짓기’로 해석하였다.)

I think the main changes since modernization may be that each "drawing the line" system has been integrated into one big system.

In the Experiment, the way of responding to the " "drawing the line" system was different in Japan, Malaysia and Korea. But it's still not clear if it should be recognized as a difference between countries.

In the discussion in Korea, I felt the possibility of people with different feelings depending on the viewpoint.

지난 여름 이후, 모두 개인의 바쁜 일정으로 간간이 짧은 메시지들만 주고 받았다. 한국에서 있었던 실험과 워크샵의 반응을 베누리에게 공유하자, 그녀는 한국인들이 국가, 정치인 등이 하는 일과 의도에 대해 어떤 종류의 정보를 대중언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지, 어떤 정보는 얻을 수 없는지 궁금해했다. 나츠코가 한국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일본과 한국 국가간의 민감한 문제가 일어났었고, 우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각각이 지내고 있는 국가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우경화에 대해 몇마디를 나눴다. 나츠코는 지난 3년간의 협업을 지원받은 사이손 재단의 사업을 마감하는 글을 쓰고 있다며, 이 프로젝트를 앞으로 계속 같이 하고 싶은데 너희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고, 너희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베누리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 https://natsukote.wixsite.com/mysite-1/english-home
* 이 글은 서영란 개인의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에 대한 시선으로
나츠코, 베누리의 의견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RE: 편지 다시보기: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 (2016~)
-----Original Message-----
From: "Yeong-Ryan Suh"<■■■■■>  
To: "Kim Junghyun"<■■■■■>

전문을 읽고 나서 궁금한 점 하나를 여쭤봅니다. 세 분은 서로 알게 되기 전부터 각각 민속문화를 조사하고 작업에 그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지요. 나츠코의 스코어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에도 전통문화를 조사, 체험, 반성해보라는 요청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작 <플로팅 보틀 프로젝트>에 응답하며 이어진 베누리의 <여권>, 서영란의 <앙케이트>, 그리고 세분의 <실험>은 모두 전통의 도상을 사용하지 않은 작업으로 보입니다. (작업을 직접 보지 못해서 잘못 이해한 걸수도 있으니 좀 더 신중하게 말하자면) 그 도상을 중요하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까요. 가령 전통굿을 조사하며 모은 사진, 영상, 음성, 소품 등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시각적 표현을 피했다고 볼 수 있나요? 전통문화와 현대화에 관한 비판적 사유 과정에서 문화의 표상보다 그 역사와 식민 피지배 국가 출생 개인들의 주체성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 걸까요?

그렇다면, 그럼에도, 굳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가 전통문화의 도상의 재현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미지의 재현에 관해 세 분이 고민하신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런 질문은 전통이라는 대상이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식민 피지배 국가의 혼종적 정체성을 밝히는 비판적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영란씨의 글에 언급되었듯(“식민 파워가 가지고 있던 ‘특정 인종/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이나 ‘정치적 표현colonial idiom’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기묘하게 결합한 신식민주의의 도구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표방하며 ‘비서구’를 수용하겠다는 여러 서구/서구중심적 문화예술 기관이 종종 정체성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전통이란 역사적 대상에 내재된 이런 위험성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앞 문단의 질문이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면, 영란씨는, 나츠코와 베누리는 전통의 도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으셨나요? 예전 작업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셔도 좋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적는데 시간이 좀 넉넉하게 필요하다면, 연말 모임 때 먼저 토론을 해봐도 되고요.)








Postscript
2019년 12월 28일 greenroom 오프라인 대화의 기록

서영란: 3년 동안 계획했던 공식적인 일정은 거의 끝났지만, 그 다음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그 아카이브 박스를 저 다음으로 받은 사람들이 생겼어요. 나츠코씨가 제게 그걸 누구에게 주면 좋겠냐 물어봤는데, 저는 다른 아시아 지역의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것보다, 구 식민 통치국 출신의 사람들에게 역사 의식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예를 들어서 덴마크는 최근까지도 그린란드와 같이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던 지역에 관해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식민지 통치의 역사가 자국의 영토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의 경제적 사업으로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시아에서의 우리의 프로젝트가 구 식민 통치국에 어떤 울림이 있을 지 궁금해져서 그런 지역에 전달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런데 나츠코씨가 지금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에게 전했다 하더라고요. 그걸 2020년 2월에 작업으로 발표할 예정이라니, 그 다음에 다시 모여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전통의 도상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제 초기 작업 <나의 신앙을 고백합니다>(2012)나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2013)에서는 전통의 도상이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따라해보려 했어요. 전통을 정식으로 전수받지 않은,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따라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점점 생각이 바꼈어요. 이 질문을 나츠코와 베누리에게도 전달했어요. 나츠코는 전통이라는 단어 자체가 서구식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봤다고 해요. 우리가 관찰한 민속적인 것들은 경계가 지어진 것이라기보다, ‘흐르는 것’이라고. 그것이 왜, 어떻게 (각 지역에서, 시기마다) 다르게 흘렀는지, 혹은 경계가 지어졌는지에 초점을 두었던 것 같아요. 전통 혹은 전통의 도상은 국가적 이념에 따라 재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흐르는 것’은 국가의 범주를 넘어가지 않을까 라는 나츠코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Contributor
서영란은 2011년부터 한국의 마을굿, 민속 춤과 의식 등을 리서치하며 공연을 만들어왔다. 2016년부터 코펜하겐 대학에서 아브라함의 3 종교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와 현대 사회에서의 종교분쟁을 공부하고, 말레이 무슬림의 모계 관습 법에 관해 석사 논문을 썼다. 앞으로 국가개념을 넘어서는 다문화적이고 다종교적인 이야기를 찾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Since 2011, Yeong-Ran Suh has made performances researching Korean village shamanic ceremonies, folk dance, and rituals. Last three years, she studied Abraham's religion (Christianity, Islam, Judaism) and religious conflicts in contemporary secular societies at the University of Copenhagen. She wrote a master thesis about Malay Muslim's matriarchic custom (adat) in Sharia courts. Now she hopes to find and share more transnational, multicultural inter-religious stories and discussions.

* Updated on 1st Feb.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