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천은 이방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언어에 내재된 권력의 불균형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특히 ‘언랭귀징 (unlaguag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언어의 일상성으로부터 멀어져 그것을 규정하고 움직이는 구조와 권력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역설한다.

Jesse Chun is an artist who interrogates systems of power by exploring language, especially English, which is tied up with legacies of imperialism. Chun confronts all current systems by undoing language – the process that the artist calls ‘unlanguaging’.
 



      SULLAE,  2020     
      <술래>,  2020    
      Jesse Chun  제시 천     


3-channel video documentation, 6 minutes 25 seconds, voiced and voiceless consonant (English), hangeul (한글) and English text,
images, index pages from intonation books, white noise, word censor bleep, dimensions variable

        https://www.jessechun.com/sullae      







제시 천(Jesse Chun), 달, 강강술래, 그리고 ‘탈언어화’의 여정
장나윤



제시 천은 언어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이다. 그는 언어를 작동시키는 사회 제도와 권력에 주목하여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 이면의 구조를 ‘읽어낸다’. ‘읽는다’는 행위는 제시 천의 작품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가 만국 공통의 언어로 불리는 영어를 중심으로 문자의 가독성 및 가해성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생한 후 홍콩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이후 북미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을 전개해온 제시 천은 이방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언어에 내재된 권력의 불균형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동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그의 작품이 한국의 관객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전시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에서였다. 올 초에는 두산아트갤러리가 후원하는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두산아트랩 뉴욕’의 수혜자로 선정되어, 두산갤러리 뉴욕에서 티파니 재연 신과 함께 2인전을 가지기도 했다.

최근 제시 천은 뉴욕 퀸즈에 위치한 세인트존스대학교 예아트갤러리(Yeh Art Gallery at St. John’s University)에서 전시를 가졌다. 전시의 제목인 <Jesse Chun: SULLAE 술래>는 그의 신작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한국의 전통놀이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총 6분 25초 분량의 3채널 비디오 작품인 <SULLAE 술래>에는 각종 기록 영상과 텍스트, 의미 불명의 기호들로 구성된 화면에 백색 소음, 사람의 음성, 경고음 등이 불규칙하게 덧입혀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록 영상은 주로 강강술래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그들은 부분적으로 확대된 이 흑백의 저화질 영상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으로 등장하여 천천히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이 영상 위로 하얀색의 사각형, 영어의 알파벳 A, 숫자 0과 한글의 ㅇ, 영어의 소문자 o와 대문자 O 등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이 문자와 숫자들은 모두 뚜렷한 흰색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강강술래를 하는 여성들의 흐릿한 실루엣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영상 표면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쉬’, ‘파’, ‘트’와 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목소리들이 더해지는데, 이는 영어 알파벳의 발음 방법을 가르치는 튜토리얼 비디오에서 따온 것이다. 그들은 같은 발음을 천천히 반복하기도 하고, 여러 개의 자음을 빠른 속도로 발음하기도 하는데, 이 불규칙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한 긴박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음소 단위로 분절되어 발음되는 알파벳들은 어떤 의미도 갖지 않으며,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언어의 물질성, 즉 마찰음과 파열음, 비음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소리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이 같은 언어의 의미 상실과 해체의 과정은 시각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작품의 중간에 ‘뉴문’, ‘목소리’와 같은 한글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모두 조각난 형태로 화면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뉴문’의 경우 화면을 벗어날 정도의 크기로 확대되어 초성 부분은 거의 잘려나가고 화면에는 ㅠ와 ㅜㄴ 만 보이는 식이다. 이렇게 조각난 단어들은 의미를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하학적 구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뉴욕의 관객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였을 터이다. 이처럼 작가는 통상적인 언어의 규칙에 따라 해석될 수 없는 해체된 언어들을 이용하여 관객들을 시각, 청각적 의미 상실의 상태로 끊임없이 몰아넣는다. 작품에는 어떤 내러티브도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시각적, 청각적 콜라주를 형성하고 해체하는 과정이 거듭될 뿐이다. 작가는 이 같은 해체의 과정을 구현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언어의 일상성으로부터 멀어져 그것을 규정하고 움직이는 구조와 권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제시 천의 작품 세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과정’의 측면이다. 작가는 ‘언랭귀징(unlanguag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미국의 언어학자 A.L.베커(A.L. Becker)가 처음 사용한 ‘랭귀징(languaging)’이라는 용어에서 착안하여 작가 스스로 만든 이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탈언어화’(통번역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deverbalization’과는 상이함) 정도가 될 것이다. ‘-ing’, 그리고 ‘-화(化)’가 지시하는 과정적 측면에서 알 수 있듯, 제시 천은 작품 속에서 해체의 결과물이 아닌 그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끊임없이 분절되고 조각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언어를 규정하는 규칙과 체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이때 비로소 그 견고함 이면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주목하는 언어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언어에는 문법과 발음 등의 규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구조와 체계가 존재하며, 이러한 체계는 사용자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특정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 혀가 입천장 어디쯤에 닿아야 한다든가,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제시 천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어 튜토리얼 음성, 그리고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외국어로서의 영어, 국제표준 영어 교수법을 뜻한다.) 교과서의 색인 페이지 등은 특히 만국 공통어인 영어의 구조적, 체계적 차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언어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영어권 국가에 살아가는 외국인이 영어 교수법(pedagogy)을 따르지 않는다면 통역 불가 상태에 빠지는 것은 물론, 열등한 소수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반드시 배워야 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영어의 규칙은 따라서 본질적으로 강압성과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 공공문서에 사용된 워터마크나 압인을 배치함으로써 이와 같은 언어의 폭력성을 관료제와 국가 체계 등 보다 광범위한 의미의 권력에 연관시킨다.

끊임없이 언어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권력과 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와 같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과거 모국어 상실과 강제적인 언어교육을 경험했다. 홍콩에서는 현재까지도 광동어, 표준중국어와 함께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상류층으로 갈수록 영어 구사력이 필수적으로 여겨지므로 언어 능력은 필연적으로 계층의 문제와 결부되곤 한다. 어린 시절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권 국가로의 이주를 경험한 작가에게 있어 영어가 상징하는 권력의 실체는 분명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탈언어화’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사실상 자전적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는 특히 홍콩 반환 이후 과거의 국가 조직, 교육 제도, 화폐 등이 순식간에 무력화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유년기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며, 이로 인해 관료 체제(bureaucracy)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과 홍콩의 역사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가 불신하는 권력과 체제는 본질적으로 식민주의 과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가 ‘탈언어화’를 통해 언어 이면의 권력을 해체하려는 것은, 결국 탈식민화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에 다름 아닌 것이다.

탈식민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은 ‘달’과 ‘강강술래’라는 소재의 선정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강강술래는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농경사회의 풍속으로, 평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밤에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여성들은 한가위 밤 보름달 아래에서 강강술래를 하며 자유롭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오랫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로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군에게 우리 측 병사의 수를 속이기 위해 강강술래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역사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강강술래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강강술래의 가사는 오랜 세월 구전되며 계속해서 변해왔는데,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담긴 내용이 많이 포함되기도 했다. 소리를 내뱉을 자유를 빼앗겼던 식민지배하의 과거에서 출발하여 강강술래의 저항적 가치에 대해 조사하던 작가는, 문득 최근 강대국들의 달 기지 개발과 관련된 ‘달 식민지화’ 논란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달은 작가에게 있어 식민주의적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한편, 탈식민주의라는 오랜 과제가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음을 상기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전시에는 <SULLAE 술래> 외에도 달을 모티브로 한 설치 및 조각 작품들이 포함되어 달의 상징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감시용 볼록 거울로 반달을 형상화한 조각과 이를 그대로 벽면에 본뜬 흑연 드로잉이 <뉴문(new moons)>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며, 달 모양의 콘크리트 스툴인 <무제 (ㄷ) (untitled (ㄷ))>또한 함께 전시되었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중간지대(in-between space)의 존재이기를 자처하는 제시 천에게 있어 ‘탈언어화’란 작품 밖의 일상에서도 계속되는 투쟁일 것이다. 최근 세계로 번진 흑인 인권 운동이 방증하듯, 권력의 불균형과 체제의 모순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 작품 속의 조각난 글자와 소리들은, 어쩌면 이처럼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작가에게 있어 강강술래를 하며 내지르는 토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토로는 마찬가지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제시 천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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