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저널리스트이자 큐레이터인 채연은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루앙루파와 협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에서의 콜렉티브의 작동 조건에 관해 고찰한다.
An art journalist and curator Tiffany Yeon Chae discusses the conditions required for art collective in contemporary art by sharing her experience of working with ruangrupa at the Gwangju Biennale 2018. (updated in 1st Feb 2020) .
Gwangju Biennale and ruangrupa, two different perspectives towards future
광주비엔날레와 루앙루파, 미래를 내다보는 다른 시선 둘
Tiffany Yeon Chae 채연
Gudskul, Collective is school, Gwangju Biennale 2018, photo by Tiffany Yeon Chae
[EN(Excerpt)/KR]
"Gudskul defines the collective as an open ‘space’ for discussions and communal activities. Instead of displaying artworks that curators want to show, it focuses on developing resources and ideas that people in the village already possess. It emphasises the importance of expanding ideas though the process of sharing knowledges. No single member in the collective permanently occupies significant roles: all the members tend to be flexible as they constantly transform their positions, thus creating a sustainable working environment for everyone. It also works on securing finance that enables the members to continue their non-profit activities. Gudskul never ceases to organically infiltrate global communities by continuing its conversation not only with local residents and local artist collectives, but also with mainstream institutions, aiming to provide insights and inspirations to those who are concerned with relevant issues."
1. 비엔날레 속 콜렉티브, ‘다른’ 가능성은 무엇일까?
자생과 대안의 방편으로 여겨온 집단성(collectivity)의 실천이 최근 주류 미술계에 편입 중이다. 2019년 12월 3일 영국 터너상(Turner Prize) 시상식에서 후보 작가 4명이 모두 수상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작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공통분모가 있는 작업으로 경쟁할 수 없다며 “예술의 공통성, 다양성, 연대성을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는데 심사위가 이를 받아들인 것. 35년 역사의 미술상 전통을 깨며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들은 올해 후보로 지명되고 처음 만나 이 논의를 했다고 한다. 경쟁을 기본으로 한 시상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연대를 결성한 무대가 된 셈. 한편 터너상은 2015년 리버풀의 건축 및 디자인 콜렉티브 ‘어셈블(Assemble)’에게 이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터너상 제정 이래 콜렉티브가 수상한 일은 처음이다.
이러한 집단적 실천은 최근 전 세계 비엔날레들이 복수의 인물 또는 아예 콜렉티브를 큐레이터로 선임하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18년 상파울로비엔날레와 타이베이비엔날레, 2019년 샤르자비엔날레가 각각 공동 예술감독을 선임했고, 2018년 광주 부산 서울 3대 비엔날레 또한 이 흐름에 동참한 바 있다. 특히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인 도큐멘타가 2022년 예술감독으로 루앙루파(ruangrupa)를 선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콜렉티브가 도큐멘타를 지휘하게 된 것.
인도네시아의 예술 콜렉티브 루앙루파는 2000년 수하르토 독재정권 붕괴 직후 보다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갈망하던 젊은 학생 6명에 의해 탄생했다. 현재는 다양한 세대의 시각예술가, 건축가, 음악가 등 10명이 핵심 멤버. 전시, 음악전문 라디오 채널, 예술창작 워크숍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예술 제도가 미약한 인도네시아에서 창작과 기획을 주도하는 독보적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이후 자카르타비엔날레 기획에도 꾸준히 관여해 왔으며 2016년 네덜란드 안헴의 손스비크(Sonsbeek) 페스티벌에서 첫 콜렉티브 출신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도큐멘타 주최 측은 2019년 2월 22일 기자회견에서 루앙루파가 전 세계 각 지역 공동체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맺고 소통과 참여에 방점을 찍은 전시를 준비할 것이라고 알렸다. 루앙루파 공동 창립자 아데 다르마완(Ade Darmawan)은 이렇게 덧붙였다. “1955년 도큐멘타가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려 창설됐다면, 2022년 도큐멘타는 식민주의, 자본주의, 남성중심주의 같은 현재의 상처에 주목하고 이와 대비되는 세계관으로서 동반자적 관계 모델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다르마완이 말한 ‘동반자적 관계 모델’에 대해 국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2019년 인천아트플랫폼과 바다미술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의 미술기관이 잇달아 루앙루파를 초청해 목소리를 청해 들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논의에서 이들의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작업은 빠져 있었다. 2017~18년 광주비엔날레가 다수 큐레이터제라는 일종의 콜렉티브 시스템으로 작동했던 환경 속에서 루앙루파가 ‘콜렉티브 속 콜렉티브’로 활약한 모습은 생각할 거리를 여럿 남겼는데 말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기획, 실행, 결과 분석에 참여했던 경험을 반추하며 광주비엔날레 다수 큐레이터를 둘러싼 협업 시스템의 전후 맥락을 복기하고, 작가 콜렉티브로 참여한 루앙루파의 전략을 함께 분석하여 제도권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실천의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
2. 광주비엔날레 속 다수 큐레이터의 협업 전술은?
2018년 한국 비엔날레 시즌의 주된 인상은 집단 지성의 부각이었다. 광주가 11인의 다수 큐레이터라는 초유의 기획형식을 채택했고, 부산이 2인의 공동감독과 게스트 큐레이터를, 서울은 한국인 4인의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를 기용했다. 단일 감독 체제의 강력한 주제의식 대신 다수 큐레이터의 확장된 주제의식을 선택한 것. 비엔날레 속 콜렉티브 시스템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단 광주비엔날레 현장은 ‘역대급’ 규모로 이전 에디션과의 차별화를 온몸으로 선언했다. 주제전 장소로 기존 비엔날레 전시관은 물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과 협력해 전당 창조원 전관의 내외부 공간을 사용하고, 5.18민주화운동 성지인 옛 전남도청 건물까지 최초로 활용하여 공간적으로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려 했다. 또 재단이 기획한 신작전 ‘GB커미션’, 해외 미술기관들의 위성전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개막식 미디어아트 ‘특별 프로젝트’ 등을 광주시 4개 구에서 열며 대대적으로 규모의 충격을 시도했다.
11명의 기획자가 만든 주제전은 총 7개 섹션으로 꾸려졌고 43개국 작가 165명이 작품 300점으로 참여했다. 기획자 중 일부는 서로의 전시장을 침범 또는 공유하는 전략을 택했다. 싱가포르 출신 리서처 겸 큐레이터 데이비드 테(David Teh)의 <귀환(Return)>전은 이 전략의 중심에 서고자 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역사 다시 보기와 재해석을 테마로 삼아 제1~4회 비엔날레의 주요 출품작을 다른 큐레이터들의 전시공간에 삽입하고, 자신의 전시공간은 비엔날레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비물질 위주의 신작 커미션으로 채운 것이다.
데이비드 테는 루앙루파를 2002년 이후 16년 만에 광주비엔날레에 ‘귀환’시켰다. 당시 루앙루파가 참여했던 제4회 광주비엔날레는 이후 열린 비엔날레에 콜렉티브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총 4개로 구성된 전시 중에서 예술가 집단을 집중 조명한 <멈_춤>전(성완경, 찰스 에셔[Charles Esche], 후 한루[Hou Hanru] 기획)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집단과 작가그룹을 초대했는데 광주비엔날레가 그룹을 참여작가로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루앙루파를 비롯해 대안공간루프, 풀, 포럼A, 파라사이트(Para Site), 쿠리만주토(kurimanzutto), 카스코(CASCO), AES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 엘름그린&드락셋(Elmgreen & Dragset), 김소라&김홍석 등 총 93개 팀이 참여했다. 전시를 통해 예술가 집단을 조망했던 광주비엔날레는 10년 후인 2012년 제9회 비엔날레에서는 6인의 공동 예술감독 기용이란 파격을 선보이고, 2016년 제11회에서는 ‘포럼’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 소규모 미술연구기관 100여 곳을 초청해 토론회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비록 광주비엔날레가 ‘콜렉티브’라는 용어를 전면에 사용한 적은 없지만, 역대 행사에서 집단 창작과 연구, 기획을 주목해온 가운데 2018년 대대적인 다수 큐레이터 시스템을 도입한 것과, 2002년 첫 선을 보였던 루앙루파의 광주로의 귀환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루앙루파의 2002년 당시 출품작
루앙루파의 워크숍뿐 아니라 2018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기간 내내 선보인 심포지엄, 라운드테이블, 강연, 아티스트 토크, 퍼포먼스, 실험음악 공연 등은 흥미로운 면모를 갖췄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꼼꼼히 섭렵한 관객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9월 개막 주간에 7개 전시별로 준비한 행사 일정이 서로 겹쳐 관객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광주 전역에 퍼져 있는 전시를 다 보기 불가능했던 만큼, 프로그램 참여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 데이비드 테가 기획한 특별 토론 세션 <금붕어는 기억하는가?>의 경우 비엔날레 국제 심포지엄의 연계행사였음에도 전일 심포지엄이 열린 비엔날레관이 아닌 ACC에서 다음날 오후에 열렸다. 두 행사를 분리하여 집중도를 높인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날도 7개 전시의 참여작가 퍼포먼스 십여 건이 비엔날레 전시관, ACC, 외부 공간에서 끝없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전시별 프로그램 분량과 일정을 서로 꼼꼼히 조율하지 못한 것인데, 개막 주간이란 한정된 시간에 중요 관객에게 자신의 프로젝트가 가장 돋보이기 바란 각자의 욕망이 충돌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운영주체 스스로 ‘규모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외부의 반응도 들어보자. 개별 작업의 질은 우수했으나 너무 큰 그릇에 과도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혼란스러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김복기는 “주제인 ‘상상된 경계들’ 아래 너무 많은 가지를 달았다”며 “주제와 연결된 키워드를 제대로 소화해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문혜진은 “‘경계’라는 주제에 모범적으로 충실히 반응”한 듯해도 개별 기획으로 기능할 뿐 “다른 전시와 충돌 혹은 교류하며 개념적 공간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총괄 큐레이터(재단 대표) 주도로 개념화한 주제어 ‘상상된 경계들’을 11명의 다수 큐레이터가 해석해 나가면서 기획자 간에 별다른 피드백이 없었던 탓이 크다. 개별 기획보다 몇 배로 복합적인 논의가 필요했으나 실제 기획과정에서는 본격적인 토론자리가 부재했다. 다만 데이비드 테가 기획한 1~4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의 ‘귀환’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이 다른 큐레이터의 섹션에 삽입되는 과정에서 내용적 충돌이 불가피했기 때문.
여러 고비 끝에 <귀환>전은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대항해 열린 ‘안티비엔날레(95 광주 통일미술제)’의 수장 강연균이 제작을 주도한 장대한 배너 작업 <만장>, 제1회 비엔날레 대상을 받은 크초(Kcho)의 대형설치 <잊어버리기 위하여>, 뉴질랜드 원주민 작가 존 풀레(John Pule)의 캔버스 작업, 이응노의 <군상> 연작을 ACC 각 공간에 전시한다. 광주의 민주화운동 역사, 비서구권-탈식민 주체의 서사, 민중의 결기를 각각 담은 작품들로 다른 큐레이터들의 전시 섹션을 연결하는 ‘링크’로 삽입되었다. 한편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선보인 수퍼플렉스의 <이방인들이여, 제발 우리를 덴마크인과 홀로 남겨두지 마세요>(2002/2018)는 기획 초기 데이비드 테와 그리티야 가위웡이 동시에 꼽은 ‘귀환’ 작업이었는데 재제작 과정에서 예산 논의 등을 거쳐 기획 크레딧이 가위웡의 전시 섹션에 귀속됐다.
사안별 합의과정에서 단호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위계를 지양하려는 총괄 큐레이터의 기본 입장은 자신이 개입하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각 섹션별 담당자들이 스스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었다. 결국 끝까지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사안은 전시마다 세워진 논리의 ‘경계’에 가두어지는 결과로 남기도 했다. 한 전시장을 공유한 두, 세 전시를 구별하는 높다란 가벽들처럼 말이다.
‘현대미술의 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기본인 비엔날레의 틀 안에서 콜렉티브의 가치를 발현한다는 건 정말로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다수 큐레이터 시스템이라는 실험이 낳은 현실적 제약은 분명했다. 큐레이터 구성에 당사자들이 미리 개입할 수 없었고, 결정된 주제어에 맞춰 아이디어를 내는 수동적 입장이 되었으며, 따라서 기획자의 권력 발휘에 동력이 떨어진 점에서다. 그러나 필자는 더욱 결정적인 문제로 재단, 기획자, 협력기관, 시행업체 등 다양한 주체 간에 너무나 견고했던 이해관계의 벽을 지적하고 싶다. 2019년 터너상 후보 선정에서 처음 만난 수상자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통해 일시적 연대를 형성한 것처럼, 광주비엔날레의 플레이어들도 비록 단기적 관계로 만났더라도 ‘비엔날레 정신’에 걸맞는 창작 결과물을 바라며 상호 협력을 통해 제약들을 창의적으로 돌파하려 했다면 더욱 매력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광주비엔날레의 역사를 통틀어 작품, 연구, 기획을 통해 ‘함께라는 가치’가 반복적 지속적으로 시도된 것을 보면, 이것이 이상으로만 끝나지 않고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가치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 더욱이 필자가 함께 했던 <귀환>전이 비록 완벽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전시 콘텐츠의 공유를 협의하고 일련의 결과물을 낸 사례이기 때문에, 다수 큐레이터제라는 구조 속에서 집단성의 발현이 그저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 루앙루파, 지역 미술 콜렉티브와 네트워킹을 통한 ‘상호 학습’
제12회 광주비엔날레의 전체 기획 과정과는 판이하게, 루앙루파의 이 비엔날레 참여는 시작부터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앙루파 앞으로 초청을 받았지만 되려 자기 이름을 지우고 동료 콜렉티브들과 결성한 또 하나의 콜렉티브 ‘굿스쿨(Gudskul: Contemporary Art Collective and Ecosystem)’로 참여한 것이다.
루앙루파는 굿스쿨 결성에 앞서 2015년 예술교육 연구그룹 세룸(Serrum), 그래픽 아티스트 그룹 그라피스 후루하라(Grafis Huru Hara)와 구당 사리나 에코시스템(Gudang Sarinah Ekosistem)을 꾸렸다. 비영리 콜렉티브 활동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 개발을 목표로 모인 것. 인도네시아의 공공 쌀 곳간 ‘룸붕(lumbung)’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자원분배 방식 ‘콜렉티브 팟(collective pot)’을 고안했다. 세 콜렉티브가 페스티벌, 라디오 채널, 작품과 굿즈 판매, 교육 프로그램 운영 및 컨설팅, 작가 에이전시, 공간 대관, 운송과 설치 등의 수익사업으로 각기 얻은 재화를 한데 모아 필요한 활동에 재분배했다.
세 콜렉티브가 한 공간을 공유해왔는데 2018년 10월 더 큰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콜렉티브의 학교’ 굿스쿨을 새롭게 런칭한다. 지원자를 선발해서 1년간 유료로 교육하며 참여자들은 이 기간 동안 굿스쿨의 일원이 되어 기획 활동을 경험한다. 굿스쿨은 콜렉티브를 토론과 공동체를 위해 열린 ‘공간’으로 정의한다. ‘루앙루파’란 이름이 ‘예술을 위한 공간(a space for art)’으로 번역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굿스쿨의 결성처럼 운영 준비도 유기적으로 진행됐다. 2016년 아이치트리엔날레,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획전,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참여작품을 통해 굿스쿨 ‘체험버전’을 최초로 가동해 본 것이다.
굿스쿨은 광주에 2018년 4, 9, 10월 3번 방문하여 각각 10일 가량씩 체류했다. 아마 역대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를 통틀어 최대 인원, 최장 체류 기록일 것이다. 이들의 최고 관심사는 광주 지역 콜렉티브들의 생태계 파악. 4월 방문에선 루앙루파, 세룸, 그라피스 후루하라의 멤버 총 10여 명이 한꺼번에 광주를 찾았다. 광주의 젊은 콜렉티브 중에서 직접 공간을 운영하는 바림, 다오라, 뽕뽕브릿지와 만나 워밍업 시간을 가졌다. 이후 준비 기간을 거쳐 9월에 굿스쿨 교장 MG 프링고토노(MG Pringgotono), 루앙루파 멤버 리자 아피쉬나(Reza Afisina), 아디 순도로(Adi Sundoro)가 광주를 다시 찾았다.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코스 참여자, 비엔날레 참여 작가, 해외 미술관 큐레이터, 광주에서 활동하는 예술 콜렉티브 등 총 20여 명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마치 2002년 작품을 재연하듯, 전시장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었다. 콜렉티브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테이블 위 낙서로도 남겼다. MG는 크레딧의 재분배의 장점을 강조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테이블에 풀어 놓으면 더 이상 한 명의 아이디어가 아니지만 대신에 훨씬 더 크게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10월에 열린 워크숍은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콜렉티브들과 함께 했다. 국내외 교류 프로젝트 운영 경험이 많은 바림을 중심으로,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해 온 다오라와 뽕뽕브릿지, 기획자 듀오 보태, 콜렉티브 활동에 관심을 갖고 독립출판, 전시 기획 등을 진행해온 예술가 오버랩, 사심지, 페이지5, 절절살롱, 브이까지 총 9팀이 주요 참여자였다. 이외에 레지던시 등으로 광주에 체류 중인 국내외 예술가, 비엔날레를 보러 온 홍콩의 예술대학 학생 그룹 등도 콜렉티브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경험을 살려 일부 세션에 참석하기도 했다.
첫 번째 수업 주제는 <콜렉티브의 예술 실천윤리>. 루앙루파를 공동 설립한 아데 다르마완이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공유하고 광주 콜렉티브의 고민을 들었다. 지속 가능성, 의견 충돌시 해결법, 리더십 문제 등이었다. 아데는 이에 대한 답으로 유머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굿스쿨 사례를 ‘토탈 사커’로 비유했다. “한 선수가 공격이나 수비를 전담하지 않고 돌아가며 맡는 게 기본 규칙이다. 각자 장기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어느 한 명이 지치지 않도록 역할을 나눈다.”
두 번째 수업 <공간 실습>은 인도네시아 대학에서 건축과 교수이기도 한 파리드 라쿤(Farid Rakun)이 진행했다. 2000년 루앙루파가 별도의 공간이 없이 가정집에서 시작한 시절에서 시작해 2016년 공장 건물을 빌린 에코시스템, 2018년 풋살 경기장이었던 공간을 매입해 입주한 굿스쿨의 맥락을 각각 소개했다. 공간의 원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콜렉티브 작업의 맥락에 맞게 변화시킨 시설의 세부를 각각 소개했다. 이어서 참여자들이 자신의 집, 작업실 또는 실제 운영하는 미술공간을 드로잉하고 그 위에 다른 색깔의 선과 면을 입혀 공공적 용도로 운영할 공간으로 바꿔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세 번째 수업 <큐레이팅>은 레온 바르토(Leonhard Bartolomeus, 당시 루앙루파 갤러리 매니저/현재 일본 YCAM 큐레이터)가 진행했다. 루앙루파가 도시사회의 현실적 이슈를 타개하는 데 관심을 쏟아온 점을 강조하며 자카르타 북부의 슬럼가 ‘그린 쉘 빌리지(Green Shell Village)’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해변에 조개를 매립해 만든 불법 간척지가 합법화되면서 주민들 간에 소유권 분쟁이 극심한 곳이었다. 루앙루파는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과 어울렸고, 오랫동안 땅을 지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념비적 오브제를 다함께 만들었다. 큐레이터가 보여주고 싶은 미술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가진 자원과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주는 역할에 초점을 뒀다. “진지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아니다. 재미있게 진행하고, 너무 멋지게만 만들지 않으려 했다. 마을 사람들 간에 심리적 간극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대학의 정규과정에는 아직도 미술사나 이론, 기획 관련 학과가 전혀 없다고 한다. 큐레이터 자격을 부여할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에, 알아서 전시를 기획하고 리드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큐레이터로 불린다. 이런 사례의 선구자인 루앙루파가 자카르타 안팎에서 벌인 일련의 활동들은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의 모델이 됐고, 그렇게 20여년이 흘러 ‘콜렉티브의 학교’ 굿스쿨의 설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콜렉티브 시스템에서 상호 배움은 본질적이자 핵심 요소인 듯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협동해서 같이 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우는 행위가 빈번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수동적 학습자와의 위치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굿스쿨 교장 MG 프링고토노는 2018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1년, 즉 굿스쿨의 첫 1년을 운영한 후에 한국을 찾아 전통적 학교와 콜렉티브가 만든 학교의 차이를 설명했다. 학교가 “졸업, 새 학생 받기, 커리큘럼, 시험, 숙제, 순위, 선생”으로 요약된다면 콜렉티브는 “공통 목적, 오픈멤버로 세대 바꿔가기, 로컬 문화, 책임, 평가, 보상, 친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루앙루파가 굿스쿨을 시작한 배경은 미술교육 제도가 부진한 인도네시아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점도 분명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콜렉티브 정체성의 창의적 확장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굿스쿨이 광주에서 운영한 ‘학교’는 광주의 콜렉티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약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바림의 대표인 강민형의 회고담을 들어봤다. “많은 대안공간이나 자생적 콜렉티브들이 실천을 앞세우지만 그 실천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 그 다음은 무엇인지? 그냥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이는 공간 운영자의 입장에서 먼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지속 가능성은 콜렉티브에게 중요한 화두이지만 동시에 현실적 상황 때문에 어느 순간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바림은 함께 추구한 대안의 효용이 사라지는 시점, 즉 “끝”을 염두에 두면서 활동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콜렉티브와 그들이 운영하는 공간의 상관관계는 중요하게 눈여겨 볼 만할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콜렉티브 활동의 확산은 과거와 현재의 양상이 달라 보인다. 과거 콜렉티브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공통분모로 모였고 단체주의적인 작업과 활동을 강조했다면, 현재 젊은 세대의 콜렉티브는 주류 업계의 시스템이 공고한 가운데 각자의 다양한 관심사에 따라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자 움직이는 스타트업 같은 양상을 보인다. 틈새를 공략하는 다양한 활동은 단발적인 성격도 많아서 부담 없이 쉽게 뭉치고 흩어진다. 물론 신구 콜렉티브 간의 공통분모도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예술적 역할을 ‘같이’ 해낼 때의 시너지 효과와, 여럿이 내는 목소리에 외부의 주목도가 커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루앙루파에게는 광주비엔날레에서의 워크숍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2002년 광주비엔날레가 첫 해외전시 초청이었는데 상까지 받으면서 루앙루파 활동이 가시화되고 체계화됐다. 광주가 16년 만에 또다시 우리를 초청한 것은 비엔날레뿐 아니라 루앙루파의 역사에도 의미가 깊다. 특히 루앙루파가 아닌 굿스쿨로 참여해서 우리가 정체되지 않고 여전히 자라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한편 광주에서 활동적으로 작동하는 콜렉티브의 수가 많지 않고 그들과 현재까지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하지만 이는 도시의 집단성(collectivity)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파리나 베이루트를 갔을 때도 시위 등으로 정치적 연대를 결성한 경우를 종종 보았지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콜렉티브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도시의 삶과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콜렉티브와의 만남은 언제나 중요하다.”
이렇게 루앙루파는 자카르타 주변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지역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을 장기적으로 실천하는 한편, 해외 프로젝트처럼 단발성으로 체류해야 하는 곳의 경우는 이미 현지에서 활동하는 콜렉티브와 접촉하여 지역의 맥락을 파악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타 지역 콜렉티브와의 만남을 통해 다르고 같은 작동방식을 비교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이 되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루앙루파가 2002년 참여했던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아티스트 그룹 활동’이었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로 ‘귀환’ 하면서 데이비드 테의 전시 콘셉트와 맞닿는 신작 제작의 방편으로 광주의 작가 그룹 및 콜렉티브와 소통하고 그들을 가시화해서 2002년 작업과의 연결점을 만들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루앙루파는 2018년 광주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광주의 도시적 맥락을 배울 수 있는 네트워크의 확장을 기대했던 터, 현재 도큐멘타를 준비하면서의 목표도 그러할까? “그렇다. 도큐멘타 개최 이전과 진행 중, 개최 이후까지 지속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한다.” 실제로 이들은 도큐멘타를 통해 연을 맺은 쿠바작가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을 굿스쿨 강연 연사로 섭외하거나, 호주 타즈매니아대학과 네트워크를 맺고 굿스쿨에 초대하기도 한다. 나아가 더 다양한 이니셔티브, 콜렉티브와 함께 하면서 더 큰 ‘콜렉티브 팟’을 만들고자 한다. 네트워크의 확장을 통해 지식의 공유뿐 아니라 운영의 방편까지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콜렉티브의 콜렉티브’ 굿스쿨의 워크숍은 비엔날레의 초대형 스케일 속에서 관객의 눈에는 당연히 아주 미미한 활동으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크레딧을 포기하고 잘게 쪼개서 동료와 나누며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지식 공유와 생산의 철학, 한 명이 중요 역할을 독점하지 않고 변화무쌍한 포지셔닝을 통해 콜렉티브 구성원이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비영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의 구축,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 현장의 예술가 콜렉티브, 주류 기관까지 가리지 않고 밀착해서 소통하며 전 세계 지역 커뮤니티를 향한 유기적인 ‘침투’를 멈추지 않는 점 등은 수많은 통찰과 영감의 지점을 선사했다. 지난 광주비엔날레 속 콜렉티브 시스템의 작동이 아쉬웠던 이유는 기획 당사자 각자가 단기에 반짝하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좇으며, 협력보다는 경쟁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에 루앙루파가 광주비엔날레 전시에서 지역의 미술 생태계와 밀착하며 유기적인 접점을 모색했던 태도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모색하는 콜렉티브의 자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상호 배움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들의 ‘길게 보는’ 시야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지속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가능한 최선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 루앙루파의 지속적인 비영리 활동은 인도네시아 콜렉티브 생태계 전체에 대한 기여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미술 외 장르, 특히 음악 페스티벌과 라디오 채널 운영으로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신생 콜렉티브인 세룸, 그라피스 후루하라와 연합해서 비단 크레딧 뿐만 아니라 금전적 이익까지 나누는 에코시스템을 실현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콜렉티브의 학교’를 운영하며 지식의 생산과 확장을 도모한다.
한국에서 활발히 작동하는 콜렉티브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려면, 비슷한 영역의 선점을 향한 경쟁보다는 콜렉티브 별로 개성적인 관심사를 살린 활동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콜렉티브의 콜렉티브’와 같은 협업 활동을 늘려간다면, 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각자의 최선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Contributor
채연은 미술 저널리스트, 에디터, 큐레이터이다. 현대미술과 동시대 한국의 문화적 역학관계에 관심을 두고 국·영문 비평을 수행해 왔다. 《Frieze》, 《ArtReview Asia》, 《아트인컬처》, 《월간미술》, 《퍼블릭아트》 등 다수의 현대미술 전문 저널에 기고했다. 다원예술 전시 <삼각의 영역>(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2019) 미디어 큐레이터로 협업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부에 재직(2017-18)하며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주제전 및 아카이브 라운지 프로그램, 파빌리온 프로젝트 런칭에 기여했다. 아트인컬처 에디터(2014-17), 아르코미술관 코디네이터(2013), 토탈미술관 코디네이터(2013)로 활동했다.
Tiffany Yeon Chae is a writer, editor and curator based in Seoul. Her articles have appeared in such journals as the Frieze, ArtReview Asia, Art in Culture, Monthly Art Magazine and Public Art. She was the exhibition coordinator and producer at the 12th Gwangju Biennale (2018), media curator of Triangular Zone (2019) and editor of He Ran To (2019).
* Updated on 1st Feb. 2020